상식 밖의 경제학(Predictably Irrational)은 행동경제학의 대표적 연구자인 댄 애리얼리가 우리의 비합리적 행동에 숨겨진 패턴을 발견하고 이를 흥미롭게 풀어낸 책입니다. 이 책은 전통적 경제학이 가정하는 '합리적 인간'이라는 개념에 도전하며, 우리가 비합리적으로 행동할 때도 그 안에는 예측 가능한 패턴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다양한 실험과 사례를 통해 보여줍니다. 애리얼리는 듀크 대학교 교수로, 자신과 연구팀이 수행한 기발하고 창의적인 실험들을 통해 우리의 의사결정 과정에 영향을 미치는 심리적 요인들을 밝혀내고 있습니다.
모든 것은 상대적이다 - 비교의 함정
어느 날, 당신은 온라인 쇼핑몰에서 셔츠를 구경하고 있습니다. 10달러짜리 셔츠와 20달러짜리 셔츠가 있는데, 갑자기 세일 공지가 뜹니다. "20달러 셔츠, 지금 7달러!"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까요?
댄 애리얼리의 실험에 따르면, 많은 사람들이 7달러에 20달러 셔츠를 사는 것보다 10달러짜리 셔츠를 선택한다고 합니다. 얼핏 보기에 이는 비합리적인 선택처럼 보입니다. 왜냐하면 7달러에 20달러짜리 셔츠를 사는 것이 더 큰 가치를 얻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우리 두뇌의 비밀이 숨어 있습니다. 우리는 절대적 가치보다 상대적 비교에 의존해 결정을 내립니다. 10달러 셔츠는 그냥 10달러의 가치이지만, 20달러 셔츠는 원래 가격과 비교하여 '13달러 할인'이라는 상대적 프레임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이처럼 우리는 항상 뭔가를 비교하며 의사결정을 합니다.
공짜의 마법 - 제로 가격의 심리학
어느 날 초콜릿 가게 앞을 지나갑니다. 린트 초콜릿이 15센트, 허쉬 초콜릿이 1센트에 판매되고 있습니다. 당신은 어떤 초콜릿을 선택할까요?
애리얼리의 실험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품질이 더 좋은 린트 초콜릿을 선택했습니다. 그런데 각각의 가격을 1센트씩 내려 린트는 14센트, 허쉬는 무료로 만들자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료인 허쉬 초콜릿을 선택했습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요? '무료'라는 개념은 우리의 이성적 판단을 흐리게 만듭니다. 무료는 단순히 0원이 아니라, 심리적으로 특별한 카테고리에 속합니다. 무료일 때 우리는 손실의 두려움 없이 결정할 수 있어 더 큰 가치가 있더라도 유료 옵션보다 무료 옵션에 끌리게 됩니다.
사회규범과 시장규범의 충돌
당신의 어머니가 맛있는 추수감사절 저녁을 준비했습니다. 식사 후, 당신이 지갑에서 돈을 꺼내 "정말 맛있었어요, 이 50달러를 받아주세요"라고 말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애리얼리는 우리 사회에 두 가지 규범이, 즉 사회규범과 시장규범이 존재한다고 설명합니다. 사회규범은 도움, 친절, 사랑 등의 가치에 기반하며, 시장규범은 돈, 가격, 효율성에 기반합니다. 추수감사절 식사에 돈을 지불하려는 행동은 사회규범이 지배하는 상황에 시장규범을 도입하는 것으로, 관계를 해칠 수 있습니다.
한 보육원에서 진행된 실험을 보면, 아이를 늦게 데려가는 부모들에게 벌금을 부과했더니 오히려 늦게 오는 부모들이 증가했습니다. 왜일까요? 벌금이 도입되기 전에는 아이를 늦게 데려가는 것이 선생님에게 미안한 일(사회규범)이었지만, 벌금이 도입된 후에는 단순히 서비스에 대한 비용(시장규범)으로 인식이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소유의 마법 - 우리는 왜 자기 것에 집착할까?
마지막으로 입었던 때가 언제인지도 기억나지 않는 옷들이 옷장에 가득 쌓여있는데도 왜 버리기 힘들까요? 당신이 몇 년 전 산 컵을 얼마에 팔겠냐고 물으면, 당신은 아마도 구매가보다 높은 가격을 말할 것입니다.
애리얼리는 이를 '소유 효과'라고 부릅니다. 일단 무언가를 소유하게 되면, 우리는 그것에 더 큰 가치를 부여하게 됩니다. 듀크 대학교에서 진행된 농구 티켓 실험에서, 티켓을 가진 학생들은 평균 2,400달러를 받아야 팔겠다고 했지만, 티켓이 없는 학생들은 평균 170달러만 지불하겠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한번 내 것이 된 물건을 잃는 것을 실제 가치보다 더 큰 손실로 느낍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필요 없는 물건도 쉽게 버리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자기 통제의 어려움 - 오늘의 나와 내일의 나
다이어트를 시작하기로 결심했는데, 초콜릿 케이크를 보면 "오늘만 먹고 내일부터 진짜 다이어트할 거야"라고 생각해 본 적 있나요?
애리얼리는 우리 안에 '현재의 나'와 '미래의 나'가 존재한다고 설명합니다. '현재의 나'는 즉각적인 만족을 원하고, '미래의 나'는 장기적인 이익을 추구합니다. 문제는 결정하는 순간에는 항상 '현재의 나'가 주도권을 가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해서 "내일부터"라는 약속을 하게 됩니다.
정직과 부정직의 심리학
애리얼리는 MIT 학생들에게 수학 문제를 풀게 한 뒤, 일부 학생들에게는 자신의 답안을 스스로 확인하고 점수를 보고하게 했습니다. 결과는 어땠을까요?
대부분의 학생들이 조금씩 부정직하게 보고했지만, 완전히 거짓말을 하진 않았습니다. 더 흥미로운 것은, 시험 전에 십계명이나, 도덕 규칙을 생각하게 했을 때 부정행위가 현저히 감소했다는 점입니다.
애리얼리는 우리가 사소한 부정직을 저지르는 것은 자기 이미지를 유지하면서도 이득을 취하고 싶어하는 심리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기대의 힘 - 가격이 품질을 결정한다?
두 통증 완화제가 있습니다. 하나는 정가 2.5달러, 다른 하나는 10센트입니다. 어떤 약이 더 효과적일까요?
애리얼리는 실험 참가자들에게 같은 약을 다른 가격으로 소개하고 효과를 측정했습니다. 놀랍게도, 더 비싸다고 소개된 약을 복용한 참가자들이 통증이 더 많이 감소했다고 보고했습니다. 우리의 기대가 실제 경험에 영향을 미치는 것입니다.
행동경제학의 실용적 교훈
애리얼리의 연구는 단순한 이론이 아닌 실생활에 적용할 수 있는 통찰을 제공합니다. 그의 실험은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하는 상황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예를 들어, 소비 결정을 할 때 상대적 비교에 현혹되지 않도록 실제 필요와 가치를 생각해 볼 수 있고, 무료 제안에 지나치게 끌리지 않도록 주의할 수 있습니다. 또한 사회규범과 시장규범이 어떻게 우리 관계에 영향을 미치는지 이해함으로써 더 건강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결론: 예측 가능한 비합리성의 세계
댄 애리얼리의 「상식 밖의 경제학」은 우리가 생각보다 훨씬 더 비합리적인 존재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우리의 비합리성이 무작위가 아니라 예측 가능한 패턴을 따른다는 것입니다. 애리얼리는 이렇게 말합니다: "인간은 대체로 미치광이이고 가끔 이성적인 존재"라고요.
이 책은 우리의 결정 과정에 영향을 미치는 심리적 함정들을 이해하고, 더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애리얼리의 실험과 이론은 경제학, 심리학, 마케팅, 정책 결정 등 다양한 분야에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우리 자신의 행동을 이해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됩니다.
상식 밖의 경제학은 단순히 인간의 비합리성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그 패턴을 이해함으로써 더 나은 결정을 내리고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합니다. 우리의 비합리성을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더 합리적인 선택으로 가는 첫 걸음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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