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블로그/행동경제학, 심리학

「넛지(Nudge)」 - 팔꿈치로 슬쩍 찌르는 행동경제학의 세계

 

「넛지(Nudge)」는 2017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행동경제학자 리처드 탈러와 법률가 캐스 선스타인이 함께 쓴 책으로, '똑똑한 선택을 이끄는 힘'이라는 부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책은 인간의 행동과 선택에 대한 흥미로운 통찰을 제공하며, 사람들을 강제하지 않고도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슬쩍 찌르는' 방법을 소개합니다.


넛지란 무엇일까요?

어느 날, 민수는 친구 지혜와 함께 대형 쇼핑몰의 푸드코트에 갔습니다. 민수는 평소처럼 햄버거와 감자튀김을 먹으려고 했지만, 이상하게도 오늘은 샐러드가 눈에 더 들어왔습니다. 알고 보니 샐러드가 눈높이에 가장 잘 보이는 위치에 배치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민수야, 넌 왜 오늘은 샐러드를 골랐어?" 지혜가 물었습니다.

"글쎄, 오늘은 갑자기 샐러드가 당기네."

이것이 바로 '넛지'의 한 예입니다. '넛지(Nudge)'는 원래 '팔꿈치로 슬쩍 찌르다'라는 뜻의 영어 단어입니다. 하지만 탈러와 선스타인은 이 단어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그들에 따르면 넛지는 "사람들에게 어떤 선택을 금지하거나 경제적 인센티브를 크게 변화시키지 않고 예상 가능한 방향으로 그들의 행동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우리는 천재인 동시에 바보다

탈러와 선스타인은 기존 경제학이 가정하는 완벽하게 합리적인 인간, 즉 '호모 이코노미쿠스(경제적 인간)'를 '이콘(Econ)'이라 부릅니다. 반면 실제 우리는 감정에 휘둘리고 실수를 저지르는 '호모 사피엔스', 즉 그냥 '인간(Human)'입니다.

상상해 보세요. 직장인 영호는 매달 월급을 받을 때마다 "이번 달에는 꼭 적금을 넣어야지"라고 다짐합니다. 하지만 막상 월급이 들어오면 이런저런 지출에 돈을 쓰고, 결국 저축은 미루게 됩니다. 영호는 저축의 중요성을 알고 있지만, 현재의 만족을 미래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 '현재 편향'에 빠진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두 가지 사고 시스템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는 빠르고 자동적이며 직관적인 '자동 시스템'이고, 다른 하나는 느리고 의식적이며 논리적인 '숙고 시스템'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에도 종종 자동 시스템에 의존한다는 것입니다.


선택 설계자의 세계

우리는 모두 '선택 설계자(choice architect)'들이 만들어 놓은 세상 속에 살고 있습니다. 선택 설계자는 사람들이 결정을 내리는 배경이 되는 '정황이나 맥락'을 만드는 사람입니다.

예를 들어, 암스테르담 공항의 남자 화장실에는 소변기 안에 파리 모양의 스티커가 붙어 있습니다. 이 작은 변화만으로 소변기 밖으로 새어나가는 소변량이 80%나 줄었다고 합니다. 남성들이 파리를 조준하게 만드는 이 간단한 장치는 완벽한 넛지의 사례입니다.

이처럼 선택 설계자는 사람들의 행동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유도하면서도, 선택의 자유는 여전히 열어두는 '자유주의적 개입주의(libertarian paternalism)'를 실천합니다.


일상에서 만나는 넛지들


기본 설정(디폴트)의 힘

어느 날, 직장인 민지는 회사의 퇴직연금 제도에 가입하라는 안내를 받았습니다. 서류에는 "별도 의사표시가 없으면 자동으로 가입됩니다"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바쁜 민지는 별다른 행동을 취하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퇴직연금에 가입되었습니다.

이처럼 기본 설정(default option)은 강력한 넛지입니다. 사람들은 현상을 유지하려는 경향이 있어 기본 설정을 바꾸는 수고를 피하고 싶어 합니다.만약 퇴직연금 가입이 선택사항이었다면, 많은 사람들이 '나중에 하자'며 미루다가 결국 가입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회적 규범의 영향력

대학생 준호는 기숙사에서 물을 많이 사용한다는 안내문을 받았습니다. 안내문에는 "당신의 물 사용량은 기숙사 평균보다 20% 많습니다"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이 메시지를 본 준호는 자신도 모르게 샤워 시간을 줄이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사회적 규범을 활용한 넛지입니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무엇을 하는지에 큰 영향을 받습니다. "90%의 사람들이 세금을 제때 납부합니다"와 같은 메시지는 세금 납부율을 높일 수 있습니다.


의미 있는 피드백 제공하기

스마트폰 사진 애플리케이션에서는 사진을 찍을 때마다 '찰칵' 소리가 납니다. 실제 카메라의 셔터 소리를 디지털 환경에서 구현한 것입니다. 이 소리는 사용자에게 사진이 잘 찍혔다는 즉각적인 피드백을 제공합니다.

이처럼 사람들에게 그들의 행동 결과에 대한 적절한 피드백을 제공하는 것도 중요한 넛지 전략입니다.


돈: 넛지가 우리를 더 부유하게 한다


저축을 늘리는 넛지

많은 사람들이 미래를 위해 충분히 저축하지 못합니다. 이는 자기 통제의 어려움, 복잡한 금융상품에 대한 이해 부족, 현재 편향 등 다양한 이유 때문입니다.

리처드 탈러는 'Save More Tomorrow(내일을 위해 더 저축하자)'라는 프로그램을 개발했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직원들이 급여가 오를 때마다 자동으로 저축 금액도 함께 증가하도록 설계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미래의 급여 인상분을 아직 '자신의 것'으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이를 저축하는 데 더 적은 심리적 저항을 느낍니다.


투자의 함정 피하기

투자에 있어서도 넛지는 중요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고점에 사서 저점에 파는' 실수를 저지릅니다. 또한 자신이 근무하는 회사 주식에 과도하게 투자하는 오류를 범하기도 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넛지 중 하나는 분산투자를 기본 설정으로 제공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직접 복잡한 포트폴리오를 구성하기보다, 다양한 자산에 자동으로 분산 투자되는 인덱스 펀드를 기본 옵션으로 제공하면 더 나은 투자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사회: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하여


장기 기증을 활성화하는 넛지

장기 기증 동의 비율은 국가마다 크게 차이가 납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 차이가 국민성이 아니라 '동의 시스템'의 차이에서 비롯된다는 점입니다.

'명시적 동의(opt-in)' 시스템에서는 사람들이 장기 기증에 동의한다는 의사를 적극적으로 표현해야 합니다. 반면 '추정 동의(opt-out)' 시스템에서는 별도로 거부 의사를 표현하지 않으면 동의한 것으로 간주합니다. 단순히 기본 설정의 차이만으로, 장기 기증 동의율은 몇 배나 차이가 날 수 있습니다.


환경을 보호하는 넛지

기후변화와 환경오염은 현대 사회의 중요한 문제입니다. 넛지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전기 요금 고지서에 이웃들과의 에너지 사용량 비교 정보를 제공하면, 사람들은 자신의 에너지 소비를 줄이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또한 종이 타월 대신 손 건조기를 사용하도록 재미있는 메시지나 디자인을 제공하는 것도 효과적인 환경 보호 넛지입니다.


넛지의 한계와 비판

넛지 이론은 많은 찬사를 받았지만, 동시에 비판도 받았습니다. 일부에서는 넛지가 사람들을 조종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합니다.

그러나 저자들은 넛지가 투명하고 회피 가능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즉, 사람들은 항상 다른 선택을 할 자유가 있어야 하며, 넛지의 존재를 인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넛지를 정당화하는 '자유주의적' 측면입니다.


넛지가 가득한 세상 만들기

넛지는 일상 속 어디에서나 찾아볼 수 있습니다. 서울의 지하철역에 설치된 피아노 계단은 사람들이 에스컬레이터 대신 계단을 이용하도록 유도합니다. 계단을 오를 때마다 피아노 소리가 나고, 기업의 후원을 받아 한 사람당 10원씩 기부가 이루어지도록 설계되었습니다.

또한 초등학교 근처의 바닥과 벽을 노랗게 페인트로 칠해 놓은 '옐로카펫'은 운전자들의 주의를 환기시켜 아이들의 안전을 지키는 넛지입니다.

이처럼 넛지는 강제나 규제 없이도 사람들이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우리 모두가 서로를 좀 더 현명하게 '슬쩍 찌를' 수 있다면, 세상은 조금씩 더 나아질 것입니다.


결론: 똑똑한 선택을 이끄는 부드러운 힘

「넛지」에서 리처드 탈러와 캐스 선스타인은 우리가 항상 합리적인 존재가 아니라, 예측 가능한 방식으로 실수하는 인간임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이러한 인간의 특성을 이해하고 선택 환경을 적절히 설계함으로써, 우리는 자유를 제한하지 않으면서도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넛지는 강제나 의무가 아닌, 부드러운 개입을 통해 행동 변화를 이끌어내는 새로운 접근법입니다. 오바마 행정부에서도 채택된 이 개념은 개인의 건강, 부, 행복뿐 아니라 사회 전체의 복지를 향상하는 데 기여할 수 있습니다.

결국 넛지의 핵심은 선택의 자유를 존중하면서도, 사람들이 자신과 사회에 더 유익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조금 더 현명한 '선택 설계자'가 된다면,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입니다.